The Difference Between Knowing The Path And Walking The Path

식물 Essay 5

봄 산의 추억

사계절 중 뒷산을 가장 자주 찾았던 시기는 봄입니다. 어릴 때부터 식물을 좋아했기 때문이죠. 부드러운 새잎이 나뭇가지마다 돋아나는 봄 산은 요즘 아이들로 치면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처럼 큰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겨우내 달고 있던 큼직하고 두터운 눈을 터트리고 새싹을 돋아내는 모습이 정말 가슴 따뜻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연두색을 좋아하지요. 연두색을 보면 봄 산이 떠올라 좋아합니다.  봄 산을 대표하는 식물은 찔레꽃이라고 개인적으로 정의합니다. 순백색의 화려한 찔레꽃이 피어날 때, 진정한 봄이라고 생각했었죠. 꽃에서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매혹적인 향기는 비싼 향수보다 훨씬 더 고혹적이고 기분 좋게 해 주었습니다.. 거기다가 먹거리도 주었죠. 찔레꽃나무밑동에서 솟아..

식물 Essay 2024.12.02

눈 내리는 소리

눈이 오는 날, 산에 오르면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 날이면 혈관 속을 흐르는 혈액 소리마저 들릴 듯 고요합니다. 그럴 때면 빗소리처럼 내리는 눈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마치 무아지경에 이른 듯, 온전히 자연과 하나 되는 신비로운 경험이죠. 처음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었던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함박눈이 쏟아지던 겨울 한낮, 모든 생명들이 따뜻한 곳을 찾아 숨어든 시간이었습니다. 호기심 많은 어린 마음에 눈으로 뒤덮인 산의 모습이 궁금했던 저는 발목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막대기를 짚고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는 건 마치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탐험가가 된 듯했습니다. 하지만 30cm가 넘게 ..

식물 Essay 2024.12.01

작은 밭 가는 길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7년이 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잊힐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리움은 더해만 갑니다. 어머니는 참 부지런한 분이셨습니다. 당시의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셨듯 자식을 위해 아끼는 것 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집 뒷길로 20분 정도 산속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작은 밭이 나옵니다. 어머니가 봄부터 가을까지 여러 가지 작물을 심고 가꾸는 공간이지요. 배추, 상추, 무, 부추, 콩, 감자, 고구마, 옥수수, 고추, 땅콩, 호박, 오이, 도라지, 들깨, 참깨 등등. 싱싱한 오이를 하나 따서 옷에 살살 닦아 한 입 맛있게 베어 물면 어머니께서 흐뭇하게 쳐다보곤 하셨습니다. 밭 주변에는 무덤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마을 어르신들의 잠자리가 하나둘 늘어났습니다. 따뜻한 양..

식물 Essay 2024.11.29

산너머

우리 마을에서 ‘산너머’는 특정 장소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쓰였습니다. 단순히 산너머가 아닌, 특정 장소를 가리키는 곳이었죠. 시골집에서 대문을 열고 나와 마을 뒤쪽으로 길을 따라서 10분 정도 가다 보면 갈래길이 나오고, 왼쪽 길로 접어들면 바로 산으로 이어집니다.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을 지나 20분 정도 올라가면 산 능선에 다다르는데, 그곳을 ‘산너머’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집 밭은 산너머와 마주 보고 있어서 자주 산책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두 산이 서로 5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분위기가 낯설고 생경한 느낌이 들었죠.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혼자서는 잘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제 나이 20세 때, 도시에서 생활할 때, 고향집을 방문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여..

식물 Essay 2024.11.29

풀과 나무가 있어 산에 간다

산을 좋아하는 저에게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산에 가세요? 저의 대답은 늘 같습니다. 산에 가면 좋아하는 풀과 나무가 있어요. 그렇게 답하면 대화가 쉽게 끝나 버리죠.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상대방은 대화 주제에 흥미를 잃어버리죠.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며, 가장 중요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치 원래 있어야 할 것처럼 무심히 지나치는 것. 풀과 나무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늘 주변에 있어서 소중함을 잊고 사는 존재.목재, 의류 재료, 식재료, 산소, 휴식, 물 저장, 산사태 방지, 기후 조절, 탄소 흡수, 공기 정화, 레크리에이션 등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무료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돈을 주고 사지 않죠. 그래서 아까운 줄 모르고 소중히 다루지..

식물 Essay 2024.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