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fference Between Knowing The Path And Walking The Path

식물 Essay

작은 밭 가는 길

Potentilla 2024. 11. 29. 20:55

6월의 텃밭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7년이 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잊힐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리움은 더해만 갑니다.

어머니는 참 부지런한 분이셨습니다. 당시의 모든 어머니가 그러하셨듯 자식을 위해 아끼는 것 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집 뒷길로 20분 정도 산속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작은 밭이 나옵니다. 어머니가 봄부터 가을까지 여러 가지 작물을 심고 가꾸는 공간이지요.

배추, 상추, , 부추, , 감자, 고구마, 옥수수, 고추, 땅콩, 호박, 오이, 도라지, 들깨, 참깨 등등.

싱싱한 오이를 하나 따서 옷에 살살 닦아 한 입 맛있게 베어 물면 어머니께서 흐뭇하게 쳐다보곤 하셨습니다.

밭 주변에는 무덤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마을 어르신들의 잠자리가 하나둘 늘어났습니다. 따뜻한 양지바른 곳이라 봄이면 고사리가 우후죽순처럼 솟아올라 늘 그곳에서 고사리를 꺾었는데 양이 상당하였습니다.

 

항상 거기에 있었겠지만, 어린아이의 눈에는 늦게서야 들어온 식물이 있었습니다. 고사리를 꺾다 보면 보이는 꽃. 산자고입니다. 어린 눈에도 그 꽃은 조금은 생뚱맞게 보였습니다. 벌써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는 산자고가, 다른 식물들이 이파리조차 제대로 피우지 못하고 있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옆에 자리 잡은 할미꽃이 반갑다고 손을 흔드는 것처럼 빙긋 웃고 있었죠.

 

어머니는 스승이셨습니다. 함께 작은 밭에 가면서 만나는 식물을 묻지도 않았는데 알려주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식물 이름을 꽤 많이 알고 있었죠. 나중에는 제가 먼저 물어보곤 했어요. ‘엄마, 이 꽃 이름은 뭐야?’ 그러면 답이 곧장 나왔지요. ‘꿀풀이야’ ‘꾸지뽕나무야

작은 밭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밭보다 조금 더 넓은 면적의 큰 밭이 5분 거리로 산 위쪽에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알았습니다. 어머니와 함께한 기억들이 많이 녹아있는 어머니의 밭이 우리 밭이 아니었다는 사실을요. 다른 사람의 밭이었는데, 주인이 도시에 살면서 경작할 수가 없어서 놀리느니 어머니께서 잠깐 빌려 쓰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밭을 경작하셔서 당연히 저는 우리 밭인 줄 알았던 거죠. 밭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도 한 번도 보지 못했거든요.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던 밭은 이제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했습니다. 그제야 어머니의 넓은 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은 밭은 단순한 농작물을 키우는 공간이 아니라,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깃든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추억 어린 어머니의 밭에 가는 길이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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