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언저리와 들에서 만나는 식물 중 어떤 식물은 애틋하면서도 따뜻하고 약간은 가슴 아린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뜨거운 햇빛에 집에 있기 힘들면 친구들과 함께 동네를 지나쳐 흐르는 제법 큰 냇가에서 멱을 감 곤했습니다. 오전, 오후 하루 2번, 한 달 가까이 웃고 재잘거리며 어울리면서 온몸은 금세 시커멓게 타들어 가서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원래의 색을 회복하였습니다. 경운기 바퀴가 짙게 난 신작로를 뛰고 걷다 보면 금속의 큰 무게도 거뜬하게 이겨낸 수크령이 듬성듬성 자라기 마련이었습니다. 수크령의 긴 잎을 보자기 묶듯 양 갈래로 묶어 놓고 뒤에 따라오는 친구들이 그것에 걸려 넘어지면 배꼽을 잡고 웃곤 했습니다.
수크령의 꽃말은 ‘가을의 향연’입니다. 벼과로 사촌 관계인 강아지풀과 비슷하지만, 훨씬 크고 억셉니다. 비슷한 식물로 ‘그령’이 있는데 수크령은 그령보다 훨씬 크고 억세서 ‘숫그령’이라 불렸고 지금의 ‘수크령’이 되었습니다. 한때 어느 지자체에서 외국 출신 수크령인 ‘핑크뮬리’를 재배하여 관광객을 유치하였고, 사람들은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하러 몰려들었습니다. 너도나도 아름다운 핑크색 물결속으로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었지만, 지금은 생태계 위해성 2급 종으로 구분되어 재배를 자제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고유의 멋스럽고 아름다운 수크령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어릴 적에는 흔하게 보이던 수크령도 요즘은 자주 보기 힘듭니다. 그만큼 서식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고 자연으로 자주 나가질 않으니 만날 기회가 줄어든 이유입니다.
광주천을 걷다가 수크령 앞에 쪼그려 앉아서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추억을 소환한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