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날, 산에 오르면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 날이면 혈관 속을 흐르는 혈액 소리마저 들릴 듯 고요합니다. 그럴 때면 빗소리처럼 내리는 눈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마치 무아지경에 이른 듯, 온전히 자연과 하나 되는 신비로운 경험이죠. 처음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었던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함박눈이 쏟아지던 겨울 한낮, 모든 생명들이 따뜻한 곳을 찾아 숨어든 시간이었습니다. 호기심 많은 어린 마음에 눈으로 뒤덮인 산의 모습이 궁금했던 저는 발목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막대기를 짚고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는 건 마치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탐험가가 된 듯했습니다. 하지만 30cm가 넘게 ..